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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들과 양말

노을 2019.07.31 20:24

드디어 오늘 그걸 해냈다. 그동안 얼마나 망설이고 망설였던가? 차마 실행하지 못하고 머릿속으로 재기만 한 게 아마 벌써 몇 년은 된 것 같다. 겨울이면 잊어버리고 잠잠하다가 날씨가 따뜻해지면 다시 마음속에 뭉게뭉게 피어올라 나를 자꾸만 망설이게 하던 그것. 그러나 여태까지 용기를 내지 못해 그저 공상에 머물고 말았던 그것. 그런데 그것을 해내고 난 지금 뒷맛은 그리 달콤하지 않다.

 

실내에서 늘 맨발로 지내는 게 습관이 된 우리나라 사람은 대개 그렇겠지만, 나 역시 신발을 오래 신고 있으면 발이 답답해서 못 견디겠다. 특별히 발에 땀이 많이 나는 게 아닌데도 그렇다. 그래서 여름엔 샌들을 애용하게 된다. 그런데 도대체 누가 언제 어디서 왜 어떻게 만들어 낸 규칙인지 샌들은 꼭 맨발로 신어야 한다니. 기온의 일교차가 심할 땐 샌들 신은 맨발의 발가락이 시린데도 왜 양말을 맘대로 못 신는단 말인가?

 

날씨가 어지간히 춥거나 혹은 눈비가 오는 게 아니라면 갑갑하게 꼭 막힌 신발보다 발가락에 숨통을 열어주는 샌들을 신고 기온에 맞추어 적당한 양말을 신어 주는 게 편하기도 하고 발 건강에도 분명히 좋을 것이다. 그런데도 패션을 좀 아네 하는 사람들은 샌들에 양말 차림을 마치 패션을 파괴하는 무지한 잡종 취급을 하니, 그런 취급을 받을 걸 알면서도 편견에 맞설 용기를 감히 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 며칠 전 더 이상 쩨쩨하게 부당한 압력에 억눌려 지내지 말자는 반발심이 생겼다. 하지만 아직 혼자 과감히 맞설 용기까지는 나지 않아 과연 샌들과 양말을 금기시하는 타당한 이유라도 존재하는 것인지 인터넷으로 조사해 보았다.

 

이미 나 같은 생각을 한 사람들이 꽤 많았던 모양이다. 샌들과 양말의 조합을 주제로 한 항목을 인터넷에서 쉽게 볼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을 금기로 하는 수긍할만한 이유는 찾지 못했다. 오히려 나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는 내용이 훨씬 많았다. 그중 하나는 지금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양말 유물이 서기 3 - 5세기경에 만들어진 것인데, 발가락 부분이 둘로 갈라져 있어 샌들과 함께 착용되었음을 보여준다는 사실이다. 또, 로마시대의 유적에서도 로마인들이 샌들에 양말을 신었음을 보여 주는 흔적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샌들과 양말의 조합이 합리적일 뿐 아니라 이렇게 유서가 깊다는 것을 알고 부쩍 용기가 생겨 나는 오늘 처음으로 샌들에 양말 차림으로 외출을 감행했다. 그렇다고 뭐 고상한 장소에 간 것은 아니다. 어떤 백인 할머니를 모시고 병원에 갔고, 그 후 평소 다니던 상점에서 간단한 쇼핑을 한 게 다지만 어쨌든 몇 년을 벼르고 벼르다 오늘 드디어 처음 실행에 옮겼다는 게 중요하다. 아무런 배경지식 없이 단지 배짱으로만 그리했다면 아마 남의 눈을 의식하고 마음이 위축되었을 텐데, 엊그제 인터넷을 통해 얻은 정보로 사전에 무장을 한 덕에 그렇지는 않았다.

 

위생 면에서 구두건 샌들이건 맨발보다는 양말을 신는 게 더 좋다고 한다. 양말이 발에서 나오는 땀과 세균의 분비물을 막아 신발이 오염되는 것을 방지해 줄 뿐 아니라, 신발의 재료에서 소량 분출되는 화학 가스가 피부로 스며드는 것을 차단해 주기 때문이다.

 

이렇듯 역사적으로나 위생적으로 근거가 확실한 샌들과 양말의 조합이 언제부터 무식한 자들의 행태로 매도되기 시작했을까? 거기에 대한 답은 찾지 못했지만, 2010년 여름에 미국에서 샌들에 양말을 신는 것이 유행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또 2014년에는 유명 디자이너의 패션쇼에도 등장했고, 이후로 몇몇 유명 연예인과 운동선수들이 종종 그런 차림을 한다. 지역적으로는 독일이 이 차림새를 많이 하는 것으로 유명하단다. 역시 그 나라 사람들은 패션에 민감하기보다는 합리성을 더 추구하는가 보다. 재미있는 사실은 미국에서는 하필 내가 사는 시애틀 지역에서 이 차림새가 가장 흔해, 몇 년 전에는 현지 보험회사의 광고에도 샌들을 신고 양말을 신은 모델이 등장했다는 것이다. 이건 또 무슨 인연인지.

 

미국에서는 사람들이 남의 눈을 별로 의식하지 않고 복장을 제멋대로 하고 다닌다. 어떤 경우엔 두꺼운 겨울 외투를 입은 사람과 반소매에 반바지 차림인 사람이 같이 다니기도 한다. 그런 자유로운 분위기에 힘입어 나도 곧잘 생활한복을 입고 돌아다닌다. 서울에서는 오히려 남의 눈에 띄는 게 싫어 생활한복을 꺼렸을 거다. 그런데 왜 내게 유독 샌들에 양말 차림은 그렇게도 극복하기 어려운 난제였을까?

 

내가 그동안 샌들에 양말 차림을 하고 싶으면서도 차마 하지 못하고 망설인 것은 그 차림을 하면 남의 눈에 무식한 자로 보인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이다. 남에게 얕잡혀 보이기 싫은 일종의 자존심, 즉 아상(我相)을 내려놓기가 그렇게 힘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어쭙잖은 아상을 스스로 내려놓지 못해 인터넷을 뒤져가며 나를 정당화하는 새로운 아상을 만들어 내고 말았다. 샌들에 양말을 신는 무식한 자가 아니라는 아상을 버리지 못해 샌들에 양말을 신는 게 아무 잘못이 아니라는 걸 안다는 아상을 새로 만들어 낸 나. 수년간의 망설임 끝에 드디어 난제를 극복해 낸 오늘, 아상을 버리지 못해 새 아상을 만들어 버린 내 꼴을 보게 되어 마음이 그다지 즐겁지는 않다.

(2019. 7.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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