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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박사 통밀빵

노을 2019.08.21 22:16



만물박사. 이것만큼 그를 한 마디로 잘 표현하는 단어는 아마 없을 것이다. 내가 알고 지내는 분 중 여러모로 독특한 분이다.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경험한 모든 것을 합해 거기에 10배를 곱하면 이 분의 경험치와 엇비슷해지려나? 워낙에 특이한 경험을 많이 한 터라 뭔가 예사롭지 않은 주제가 나오면 그의 입에서 종종 “그거 내가 해 봤는데, …”라는 말이 튀어나온다. 그런 그가 가끔은 어이없어 보이기도 한다.

 

지금은 본인 말로 반은퇴했다고 하지만, 그는 아직도 30여 년째 흑요석을 쪼아 만드는 돌칼의 제작자로 활동하고 있다. 수시로 세계 여러 나라  박물관의 초청을 받아 돌칼에 대해 강의와 제작 실연을 하기도 한다. 그가 만든 돌칼은 시애틀 제일의 관광지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에서 볼 수 있다. 아직 한국인에겐 친숙하지 않지만 외국 관광객이나 미국인들 사이에선 꽤나 인기 있는 상품이다. 일 인당 식비가 400불 이상이라는 시애틀 교외의 한 고급 식당에서는 그의 돌칼을 식사용으로 식탁에 내놓는다고 한다.

 

그런 그가 어제 내 친구와 나를 집으로 초대했다. 통밀빵 만드는 법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다. 이 통밀빵은 본인이 직접 개발한 것이라고 한다. 수년 전에 한국에서 돌칼 만드는 법을 배우러 온 이들이 이 빵에 반해, 돌칼 대신 빵 만드는 법을 배워 가 지금은 한국에서 ‘황금똥빵’이라는 이름으로 사업화했다고 한다. 일본인 제자도 일본에서 ‘노토레뻬빠빵’ 즉 화장지가 필요 없는 빵이라는 이름으로 팔고 있다고. 그만큼 쾌변의 효과가 뛰어나다.

 

사부는 제자인 우리에게 미리 만들어 둔 빵을 시식하게 해 주었다. 막연히 단단하고 거친 빵이려니 예상하고 있었는데, 웬걸 식감이 갓 구운 잉글리시 머핀과 흡사하다. 색깔만 통밀 특유의 갈색일 뿐, 속살의 조직은 영락없는 잉글리시 머핀이다. 통밀가루와 소금, 이스트만으로 만들었다는데 의외로  맛있다. 겉은 약간 단단하고 속은 스펀지처럼 말랑하다. 친구와 나는 염치 불고하고 한 번 더 청해 그 담백한 맛을 즐겼다. 사부는 이게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빵이라며 자부심이 대단했다.

 

사부와 함께 빵 굽는 실습을 할 것을 기대하고 왔는데, 이날 말로만 강의를 들었다. 빵이라고는 만들어 본 적이 없는 나는 단계별로 하나씩 짚어 가며 의심스러운 부분을 질문하고 노트에 기록해 나갔다. 세세한 부분까지 설명을 다 듣고 나니 의외로 간단해 보인다. 해 볼만한 것 같다.

 

사부가 특별히 주의하라고 강조한 것은 밀가루를 사지 말고 통밀을 직접 빻아 사용하라는 것이다. 시중의 밀가루에는 어떤 첨가물이 들어 있는지 알 수 없고, 또 방금 빻은 것만큼 신선하지도 않다는 게 그 이유다. 사부는 본인이 찾아낸 가장 좋은 통밀을 보여 주었다. 바로 이곳 워싱턴주에서 나는 품종이다. 그 재배 농장에도 직접 가 보고, 거기서 통밀빵 만드는 방법도 보여 주었단다. 별다른 제조 비법도 없어 보이는 이 빵이 이렇게 맛과 효과로 사람들의 인정을 받게 된 이유는 아마 사부의 이런 열정에 있는 것 같다. 최상의 재료와 최적의 배합 비율을 찾아낼 때까지 혼자서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를 거쳤을 것인가. 

 

그는 수십 년 전에 우동 만드는 법을 배우러 당시 만 불이 훨씬 넘는 비용을 들여 일본에 다녀 오기도 했는데 그 때문에 마누라에게 이혼당할 뻔했다며 너스레를 떤다. 그때 700불 주고 샀다는 우동 국수 자르는 칼도 보여 주었다. 마침 내 친구도 요리에 관심과 소질이 많은지라, 둘이는 요리를 주제로 한동안 대화를 이어 갔다. 그는 이곳으로 이사 오기 전에는 마음 맞는 부부 5쌍 정도가 요리 클럽을 만들어 정기적으로 함께 요리를 즐겼단다. 심지어 직접 기르던 양을 같이 잡기도 하고…  그 요리 클럽이 오랫동안 잘 지속된 이유 중 하나는 모든 일을 남자들이 다 도맡아 하고 여자들은 앉아서 놀다가 먹는 일만 했기 때문이란다. 사부는 올겨울에 새로 요리 클럽을 하나 시작해 보자고 제안했다. 

 

꼬리를 물고 계속 이어지는 요리 이야기를 가까스로 마감하고 자리를 뜨려는 우리에게 사부는 갓 빻은 통밀가루와 소금, 그리고 효모를 챙겨 주었다. 조리용 저울이 없는 나를 위해 각 재료를 최적의 배합 비율대로 싸 주었다.

 

오늘 아내가 외출한 사이 어제 받은 그 재료를 이용해 빵을 직접 만들어 보았다. 중간에 약간의 우여곡절이 있긴 했다. 오븐 안에 다른 베이킹 팬이 들어있는 줄 모르고 예열했다가 반죽을 넣기 직전 뒤늦게 발견해 서둘러 빼려다 반죽을 바닥에 깻박쳐 잠시 절망에 빠지기도 했고, 게다가 그 베이킹 팬에서 연기가 나서 연기 감지기가 요란하게 경보음을 울려 당황하기도 했다. 하지만 다행히 결과는 그런대로 만족스럽다. 다만 어제 시식한 것보다 겉이 더 딱딱하게 되었는데, 이유를 잘 모르겠다. 혹시 굽는 온도가 너무 높았었는지…

 

어제 사부가 아내를 위해 빵을 약간 싸 주었다. 빵을 특별히 좋아하지 않는 아내가 그 빵을 먹어 보더니 맛있다며 마음에 들어 했다. 요리 클럽 얘기를 꺼냈더니 반응이 시큰둥하다. 요리하기가 얼마나 힘든지 아느냐며. 그러더니 이 요리 클럽은 일은 남자가 다 하고 여자는 먹고 놀기만 하면 된다고 하자 태도가 180도로 바뀌었다. 적극 찬성이란다. 심지어 빨리 만들란다.

 

오늘 첫 작품이 대체로 만족스럽다. 앞으로도 이 빵을 계속 만들게 될 것인지는 아내에게 달렸다. 맛이 아내 입에 맞고 쾌변의 효과가 확실하게 나타나면 계속 만들게 될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아마 가끔 별미로나 만들어 먹게 될 것이다. 만일 계속 만들게 되면 통밀을 빻을 맷돌부터 장만해야 한다. 그리고 다음엔 계피와 강황을 섞어 건강 효과를 더 높이고, 건포도와 견과를 섞어 맛도 다양하게 내 볼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난생처음 내 손으로 빵을 만들어 본 오늘, 아까 반죽을 주무르고 치댈 때의 그 밀가루 반죽 향기가 아직도 코끝에 생생하다. 오늘 밤 꿈에도 나는 빵을 굽지 않을지.

 

*통밀빵에 관심 있는 분을 위해 레시피를 적어 본다.

 

재료

- 통밀가루 500g (통밀을 직접 빻아 쓸 것을 권장함. 미국에서는 Wheat Montana Farms & Bakery에서 생산하는 Bronze Chief Hard Red Spring Wheat (또는 Hard Red Winter Wheat)를 추천하며 이 제품은 Winco에서 구입 가능)

- 소금 15g (약 1 티스푼 정도) 또는 그 이하

- 이스트 3 – 5 g

- 물 475cc

 

반죽: 재료를 고루 잘 섞은 후 반죽을 잡아당겨서 접기를 반복하며 15분 정도 치대기를 해준다.

 

숙성: 반죽을 그릇에 담아 뚜껑을 덮고 부피가 두 배 반 정도 부풀 때까지 숙성시킨다 (여름 3시간 – 겨울 6시간 정도)

 

굽기:

- 숙성된 반죽은 기포가 터지지 않게 조심히 다룬다.

- 반죽이 바닥에 눌어붙지 않게 팬에 밀가루를 충분히 뿌려준다.

- 반죽을 팬에 담아 펑퍼짐하게 만든다.

- 위 반죽을 적당한 크기로 잘라 분리해 준다. (생략 가능)

- 분리된 반죽을 세 번 정도 접어 모양을 잡아 준다. (생략 가능)

- 다시 부풀어 모양이 잡히도록 30분 정도 놔둔다.

- 오븐을 화씨 400도 (섭씨 200도)로 예열한다.

- 팬에 담긴 반죽을 오븐에 넣어 15분간 굽는다.

- 팬을 꺼내 방향을 180도 바꾸어 넣고 10분간 더 굽는다.

- 완성.

 

(2019. 8.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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